남미에선 옛 잉카 영토를 중심으로 16세기 중반부터 와인의 생산이 확산되었다. 베드로 데 발디비아의 부하였던 까라반떼스는 1548년 포도의 종자를 소지하고 들어가 칠레에서 최초의 포도 경작과 와인의 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그 후 선교사들의 주도 하에 아르헨티나를 위시한 남미의 전 지역에서도 제례용 와인 생산되기 시작하여 포르투갈의 브라질 정복기에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비옥한 토양과 알맞은 기후 조건에 뒷받침 된 신대륙의 와인 산업은 비약적으로 성장했고, 결국 본국인 스페인의 포도주 생산자들의 위상을 위협하게 되었다. 신대륙과의 와인 무역량이 감소하자 그들은 당시 국왕이 펠리페 2세에게 압력을 행사하여 신대륙의 와인의 생산에 대한 통제권을 발동시키도록 한다. 이러한 통제권은 주기적으로 행사되어 1654년에 이르러 스페인 국왕은 식민지에서 새로운 포도나무의 식목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며 기존의 포도밭에 세금을 부과하는 칙령을 발표하게 된다.
이러한 본국의 통제 탓에 식민지의 와인 산업은 중남미의 역내 교역에 힘입어 간신히 명맥만을 유지해 왔다. 즉, 교역에 있어 스페인을 위시한 유럽 국가들과 상호 보완성이 없고 오히려 충돌한다는 사실은 신대륙에서 포도주의 생산이 억제된 원인이 되었다. 이런 배경은 역설적으로 포도와 와인 산업이 중남미의 단일 작물화 되지 않은 긍정적 결과를 낳았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포도주의 대량 생산을 저해했던 요인은 본국의 견제뿐만이 아니었다. 협소한 역내 시장, 제한된 자본과 기술, 영세한 양조장, 철저히 노동력에 의존한 생산 활동, 창고 시설의 미비 등이 와인 생산을 저해해 온 다른 요인들이었다. 더욱이 보호주의 무역 장벽이 철폐된 식민 시대의 말기부터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산 포도주들이 물밀듯이 몰려오기 시작하면서 신대륙의 와인 산업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와인 산업의 기업화와 이를 통한 자본 축적은 불가능했고, 19세기 중반 경이 되어서야 전환기를 맞이한다. 새로운 자본이 유입되었고, 신기술이 보급되었으며 생산에 있어서도 표준화, 중앙 집중화,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윤 추구의 개념이 도입되었다. 제례 중심의 와인 생산이 기업 중심으로 옮겨간 것이다. 가장 먼저 이 단계에 진입한 지역은 당시 멕시코 영토였던 캘리포니아 지방이며 가장 성공을 거둔 곳은 유럽에서(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 신품종과 신기술을 들여왔던 칠레와 아르gps티나이다. 생산의 혁신은 국내 소비 시장을 형성시키는 효과를 불러 일으켰고, 이는 곧 산업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또 1850년대 칠레의 부유한 지주 계급들이 프랑스산 와인을 수입하기 시작했는데, 수입이 시작되고 얼마 후 프랑스에서는 포도나무뿌리진디로 인해 거의 모든 포도원이 황폐화되는 일이 발생했다. 그런 이유로 프랑스산 와인의 수입과 더불어 일자리를 잃은 많은 프랑스 와인 생산업자들이 칠레로 이주해 왔다. 칠레가 ‘남아메리카의 보르도’라는 명칭을 얻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위와 같은 역사적 배경 하에서 오늘날 중남미의 거의 모든 나라는 와인을 생산한다. 멕시코는 혁명 이후에 높은 수입 관세와 외국산 와인의 수입 제한으로 와인 산업을 부흥시켰고 외국인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했다. 브라질은 히우 그란지 두 술(Rio Grande do Sul) 지방을 중심으로 하여 생산을 확대해 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오늘날 중남미 와인 생산의 중심은 칠레와 아르헨티나이며 그 중에서도 칠레는 가격 경쟁력 있는 와인의 생산국이다.
칠레는 남북의 길이가 6000km나 되는 긴 국가이지만 대부분의 포도주 생산은 수도인 산티아고(Snatiago)의 450km반경에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칠레가 안데스 산맥에서 태평양까지의 좁고 긴 영토상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은 포도밭들이 매우 유사한 지리적/기후적 조건 하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지역은 위도 32도에서 38도에 걸쳐 있는 칠레의 중부 지역인데 포도 농장들은 물이 풍부하고 바람의 영향을 덜 받는 계곡에 주로 위치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칠레의 포도 생산지 표기에는 대부분 계곡(Valle)이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Valle del Aconcagua, Valle Central, Valle del Maipo) 기후는 4월부터 9월까지의 눈과 서리가 거의 내리지 않는 온화한 겨울이 있고 따가운 태양의 여름이 있는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우이다. 가장 더운 여름인 1월의 평균 기온은 화씨 68도이고 가장 추운 겨울인 7월의 평균 기온은 46.6도이다. 세계적인 포도주 산지의 기후가 그렇듯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조건은 수확기 직전의 강한 햇살과 건조한 날씨인데 이는 포도의 당도를 높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또한, 칠레는 동쪽의 안데스, 서쪽의 태평양, 남쪽의 빙하, 북쪽의 아따까마 사막에 둘러싸인 지리적으로 고립된 국가이다. 이런 조건은 기후에도 영향을 주었지만 포도 재배에 있어선 또 다른 요인을 제공하는데 바로 이 고립성으로 인해 필로세라라는 포도 진드기가 칠레에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포도 재배에 가장 큰 위협이었던 필로세라는 1877년에 미국과 유럽의 포도밭과 고급 포도 종자들을 전멸시킨 바 있다. 이 때 유일하게 영향을 받지 않은 재배지가 바로 칠레이며 미국과 유럽의 포도주 산업의 재건을 위해 칠레의 포도 종자가 다시 미국과 유럽으로 역 수출 되었다. 그러므로 칠레는 이미 필로세라로부터 안전한 지역으로 인식되어 왔다. 칠레는 이러한 병충해로 인해 포도 작황에 타격을 입을 경우가 없고, 다른 생산지에서 이로 인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칠레의 포도주 산업은 반사 이득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 칠레 산 포도주의 수출이 확대되는 것은 물론이며 포도 농사를 망친 외국 기업들에게 포도 원액을 수출할 수 있는 기회도 포착할 수 있게 된다. 칠레의 기후가 포도주 생산에 있어 제1의 자산이라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증명된 바 있다. 16세기에 뻬드로 데 발디비아를 필두로 한 스페인의 정복자들이 도착했을 때 칠레는 그 무엇보다도 지중해 연안국인 스페인과 매우 흡사한 기후로 그들을 맞이했다. 그러므로 칠레는 스페인 정복사에 있어서 지중해성 기후대에 최초로 정착한 지역으로 기록되어 있다. 인접국인 아르헨티나도 칠레와 유사하게 포도 생산에 적당한 토양과 기후, 상대적으로 저렴한 노동력과 병충해로부터 안전한 기반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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